지난 9월 30일, 네이버TV가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한때는 네이버가 유튜브를 견제하며 네이버TV를 전면에 내세운 적도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온 지 딱 10년 되는 해입니다. 네이버 메인페이지에 ‘넷플릭스 10주년’ 배너가 도배되다시피 했던 걸 떠올리면 네이버 입장에선 묘한 타이밍이었겠다 싶습니다. 넷플릭스는 이미 세계적인 플랫폼이 됐고 네이버는 숏폼 중심의 ‘클립’을 앞세웠습니다. 그 사이 네이버TV는 뒷문으로 조용히 퇴장했습니다. 네이버TV와 네이버 클립, 유튜브나 틱톡, 그리고 OTT까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긴 어렵지만, 우리가 영상을 보는 방식이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는 대충 보이는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온 건 2016년입니다. 우편으로 DVD를 빌려주던 회사가 이제는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세계 최대 플랫폼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콘텐츠를 보는 나름의 ‘순서’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하고 한참 뒤에야 비디오테이프나 DVD로 나왔고, 시간이 더 지나면 설날이나 추석 명절 특선영화로 TV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봤던 걸 또 보고 또 보면서 말입니다. 드라마는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앉아야 했고, 그마저 놓치면 재방송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넷플릭스는 이 정해진 ‘틀’을 깨버렸습니다. 보고 싶을 때 보고, 잠깐 멈췄다가 다시 보고, 몇 편을 이어서 볼지도 온전히 사용자 마음에 달렸습니다. ‘정주행’이 일상어가 된 것도 이 덕분 아닐까 싶습니다. 극장이나 방송 채널이라는 관문을 꼭 통과해야 한다는 공식도 함께 깨졌습니다. 스트리밍으로 공개된 영화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는 일도 이젠 낯설지 않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2019년 제91회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감독상 등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스트리밍 영화가 콘텐츠 경쟁시장 한가운데로 입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넷플릭스는 어떤 존재일까요. 해외 콘텐츠가 들어오는 거대한 창구이면서, 한국 콘텐츠가 세계로 나가는 통로가 됐습니다. <로마>가 오스카를 받은 2019년에 ‘K-좀비물’ <킹덤>이 나왔고, 이후 <오징어 게임>이 공개됐습니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은 투자를 받지 못해 서랍 속에 묻힐 뻔했던 이야기였다고 했는데 그런 작품이 넷플릭스를 만나 세상에 나왔고, 넷플릭스 역사와 더불어 황동혁 감독 자신의 커리어에도 한 획을 그었습니다.
넷플릭스 이후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같은 해외 OTT가 들어왔고, 국내 OTT들도 질세라 너도나도 뛰어들었습니다. 그 사이 콘텐츠 제작비는 계속 늘었고, 예전에는 엄두도 못 냈던 스케일과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넷플릭스의 막대한 자본이 한국 콘텐츠의 가능성을 키운 건 어느 정도 맞지만, 우리 IP가 글로벌 플랫폼에 귀속되는 구조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작 생태계가 글로벌 플랫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숫자를 보면 더 실감이 납니다. 와이즈앱·리테일 집계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약 1천550만 명으로, 인구 대비 거의 30% 수준입니다. 주요 OTT 앱 가운데 사용시간 점유율은 약 58%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영상을 보며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넷플릭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OTT가 커진 만큼 극장은 죽었을까요? 팬데믹 이후 영화 소비 방식이 크게 달라진 건 맞습니다. 2025년 국내 극장 관객은 약 1억 600만 명으로, 전년(약 1억 2천300만 명)보다 약 14% 줄었습니다. 이게 전부 OTT 탓이라고 하면 극장도 억울할 것입니다. 달라진 관람 습관, 유튜브나 숏폼 같은 초강력 라이벌의 등장, 영화 말고 다른 걸로 시간을 보내는 소비자들까지, 극장으로선 사방에서 타격을 받은 셈입니다. (이제는 유튜브로 인해 넷플릭스도 위협당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도 주목해볼 만합니다)
그래도 2026년에는 천만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습니다. 장항준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1천692만 명을 모아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에 올랐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작품도 천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900만 명을 넘기며 국내 개봉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올해 상반기 극장 관객도 약 5,700만 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34% 넘게 늘었습니다. 관객이 극장에서 볼 영화를 더 까다롭게 고르기 시작했다는 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극장은 ‘시간 좀 보내려고 아무거나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이 됐습니다.
스크린과 넷플릭스를 넘나드는 작품도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8년 만의 신작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9월 23일 극장에서 먼저 개봉했고,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됩니다. 거장의 신작을 넷플릭스보다 먼저 영화관에서 만나게 되는 셈입니다. ‘어차피 넷플릭스로 볼 텐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극장에서 보는 느낌은 또 다릅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극장이냐 OTT냐’ 같은 단순한 양자택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할 수 있느냐에 가깝습니다. 넷플릭스가 영화산업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넓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편성표에 적힌 방송 시간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영화를 꼭 극장에서 처음 봐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가 같은 날 전 세계에 풀리고, 베니스에서 상을 받은 영화를 몇 주 뒤 소파에 누워 편하게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꽤 호사스러운 일입니다.
넷플릭스 10년의 의미는 OTT 기업 하나가 엄청나게 성공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상을 만들고 보는 방식, 그리고 영화와 방송을 어디에서 어떻게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꿔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앞으로의 10년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습니다. 플랫폼은 계속 바뀌고, 이야기의 깊이도 영상의 길이도 시대의 흐름도 전부 달라질 것입니다. 네이버TV의 존재가 그러했듯 또 사라지는 것들도 생겨나겠지만 그런 흐름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스토리’를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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